Blue Collar Man
Blue Collar Man
하우스 주변 풀 베기를 마치고 델라웨어 재배하는 연동 하우스 겉 비닐을 아내와 함께 벗겨 내어 치우느라 좀 고생했다. 비용도 그렇지만 해마다 씌우기가 엄두가 안나 2년마다 교체하는데 올해가 그렇다.
아무튼 이미 새로 씌울 비닐 값으로 300여만원을 치르고 지난 달 말께 받아 뒀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지난해보다 20%이상 오른 것 같다.
2년쯤 되면 투광율도 현저히 떨어지는데다가 여기저기 찢겨 행여 태풍이라도 지나가면 농사 작파해야 하고, 철재 파이프로 지어지다 보니 날 좋은 때에 파이프나 비닐을 고정하는 패드와 스프링이 녹슨 것은 교체하거나 손을 봐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갈수록 철재 품질도 교묘히 낮아진 탓인지 최근에 교체한 것이 오히려 언 추위에 파이프 곳곳이 터지기도 했다. 일을 꼼꼼히 하기로 치면 끝도 없다.
확실히 재작년보다 힘들다.
나이도 서서히 드는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드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 전부터 이스라엘서 팔레스타인 꼴 보기싫다고 통곡의 벽만큼이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온 주변을 휘감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는데 TV에서 본 그런 장벽에 갑작스레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달리 불혹이 아니다.)
농사가 따지고 보면 물농사요, 햇볕농사다.
특히, 시설 재배에서 햇볕 관리는 농사 성패의 중요한 몫이라 소홀히 할 수 없다. 계절을 거슬러 농사 짓는게 더 근본적인 문제겠지만, 한겨울 추위에 보온에만 치중하다 보면 자칫 햇볕 관리와 환기(공기의 소통)에 소홀해질 경우가 많다.
내 깜냥에는 한겨울이나 이른 봄 주변의 하우스를 지나갈 때 환기한 정도로만도 주인이 뭘 알고 농사 짓는지 아니면 막무가내인지 짐작하기도 한다.
흔히들 작물의 광보상점, 광포화점이 얼마인데 하고 따지는데 내 경험으론 음지식물이 아니고서는 종일 구석구석 볕을 많이 받을수록 작물은 튼실하게 자란다.
덧붙이면, 그러기에 작물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배게 심는(밀식)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외견상 더 심으면 더 많은 수확량을 기대할 것 같지만 결과는 꼭 그렇지 않다. 수량보다 품질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그렇다.
전에 어디선가 얼핏 본 기억이 있는데 좀 극단적인 이론이라 여기지만, 가령, 한평에 심겨진 한 포기의 상추와 스무 포기의 상추의 본질적인 가치는 같다는 것이다.
왜냐면, 동일 공간에 부여 된 우주의 기운은 같기 때문이란다.
어떤가 그럴듯 하지 않나. 난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쪽으로 기운다.
가끔 엄청 큰 과채류 사진이 TV나 인터넷에 기사로 오르는데 자세히 보면 물론 토양의 비옥도도 중요하겠지만, 한결같이 제멋대로 자라도록 널찍하게 심겨져 있다.
요즈음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지고 특히나 주택담보 대출금리가 많이 올라 막차로 내 집 마련에 동참했던 서민들이 이자치르기도 전전긍긍할 처지이고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불안한 상황이다.
농사짓기 시작하고 5년쯤 될 무렵, 나 역시 애써 방울토마토 농사를 지어 남은게 적자여서 생활이 여의치 않아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당장 쌀 팔 걱정에 잠못이루던 시절, 밑천이 없어 돈드는 농사는 못하고 놀 수도 없어 궁여지책으로 여름에 3년 내리 상추농사를 지었는데 - 듣기로 상추(엽채류)농사는 가격 부침이 심해서 일종의 투기화되어 마지막으로 하는 농사라고도 하던데 - 영농일지를 들춰 보니 결과가 이렇다.
첫해, 8/15일 수확개시 10/15일 종료. 총 14회 수확 재식거리 20cmx 20cm
( 35주/평 ) 4kg들이 1,600box 수확
둘째해, 9/4일 수확개시 11/25일 종료. 총 17회 수확 재식거리 20cm x 25cm
( 28주/평 ) 4kg들이 2,430 box 수확
셋째해,9/1일 수확개시 11/18일 종료 총17회 수확 재식거리 약 25cm x 25cm
( 23주/평 ) 4kg들이 2,260box 수확
첫해는 원예 책자 권장 간격으로 심었는데 2주 빠른 고온기 수확 탓도 있지만 잎이 겹쳐 수확도 어렵거니와 잎이 틀어지고 얇아져 품질,수확량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고, 둘째해엔 품질 수량이 대체로 만족스러웠지만, 셋째해에 수량은 약간 줄어도 품질이 더 좋아져 수취가격은 더 높아졌다.
이 모든 수치는 각 해의 날씨(일조량, 일조시간, 온도 등)나 비배관리 같은 중요한 변수를 무시한 수치지만 그 나름으로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본다.
모든 농부의 욕심이 한 포기라도 더 심고자 하지만 결국 식물도 제 뻗을 공간을 암암리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식물과 동물의 구분은 움직일 수 있느냐 여부로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식물도 운동성을 갖고 끊임없이 조건이 좋은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즈음 인권을 넘어서 동물권을 얘기하는데 억지로 덧붙이자면 아무리 영리를 목적한 농사라지만 식물권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식물이건 좁은 곳에 몰아 놓으면 기필코 말썽이 난다.
우열이 생겨 조건이 유리한 처지인 쪽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처지는 쪽을 더 짓누느려 하고 결국 약한 쪽은 제 권리도 누려 보지 못하고 스러진다.
이를 막기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천부의 권리를 부여 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배려와 안목을 지닌 조정자가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 애써 기분을 밝게 하려 해도 마치 형체도 없는 거대한 무기력증에 감염되어 영 맥이 빠진다. 나같은 비루한 촌부가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할 수도 없고 눈감고 귀막고 돌아 서자니 내키지 않고.
인간들이 만든 세상은 과연 진화하고 있는가? Absolutely Not.
- S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