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away train
Runaway Train
만추다. 빈 들녘이 고즈넉하다.
우리 영화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김혜자, 정동환 주연의 '만추'가 생각난다.
항상 겨울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시험을 치뤄서인지 느긋해하려 하지만 한결 쌀쌀한 날씨에 두툼한 점퍼 차림인데도 버릇처럼 자꾸 옷깃을 여민다.
전에 토마토나 오이를 시설재배할 때는 10월이 바빴다. 겨울을 나기 위해 온도가 더 내려가기 전에 비닐을 씌워야 했기에.
포도를 심고서는 11월부터 분주해진다.
어제서야 첫 서리가 내릴 만큼 해가 갈수록 포근해진 탓에 일찍 수확을 목표로 하는 농가는 벌써부터 수선스럽다.
낙엽이 지고 동계 전지로부터 본격 농사가 시작된다.
동네를 지나치면 포도농사 짓는 사람들이 모여 나무를 잘라 보니 아직 수액이 나와 전지하기엔 이르다는 둥 이러저런 얘기가 오간다.
딸기의 경우 10월상순경 전후로 정식하고 활착 된 후 휴면을 위해 일정시간 저온이 경과해야 하므로 요즘 아랫잎 따내고 멀칭하는 중이니 본격 피복후 보온은 내달 초가 너머야 될듯하다( 반촉성 기준임 - 작형 마다 다르고 재배 경험이 없어 자세히 말 못함.)
이 동네 포도는 대부분 델라웨어다. 다른 품종에 비해 작형을 다양하게 재배할 수 있고, 무엇보다 휴면타파제 처리 효과가 크고, 워낙 포도알이 작다보니 지베렐린 처리를 하여 무핵 재배를 하게 되면 약 3주 정도의 숙기 단축효과가 있어 경제성을 고려해 대체로 조기재배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게다가, 비닐 피복은 대부분 품앗이로 이뤄지니 거의 한달 내내 전지하랴 비닐 씌우러 다니랴 바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초조기가온 작형으로 내년 4월 20일경부터 수확을 하려면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전지를 마치고 휴면타파제( 보통 석회질소 20% 상등액이나 메리트청 2배액을 포도 눈에 도포 처리함)를 처리하고 비닐 피복을 마치고 가온 준비를 해야한다. 농사는 타이밍의 예술이라 내 나름으로 부르는데,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일을 하게 되고 공교롭게 일이 한꺼번에 밀려 스케쥴이 촉박하면 더욱 그러하다.
5월 중순경부터 수확하는 조기가온 재배도 시간이 촉박함은 다르지 않다.
( 엄격하게 따진다면, 일전에 잠간 언급한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것도 시설 재배가 아닌 제 철에 나온 농산물이 아니라면 그 가치는 훨씬 평가 절하 될 수 밖에 없지만, 계절적으로 재배에 열악한 환경이나, 농산물 출하가 분산되어 연중 공급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순기능이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너나 할것 없이 두고두고 논쟁거리이며, 나 자신도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를테면, 초유기농(Beyond organic farming) 하는 분을 기꺼이 고개 숙여 존경할 수 있지만, 냉정히 실천 가능 정도와 현 실정을 감안하면 내겐 너무 아이디얼하게 받아들여진다. 개인적 실천에 국한한다면 여전히 나의 준거대상이다. 항상 옳고 그름보다도 그 정도를 가늠하는게 가장 큰 문제다.)
나 역시 며칠 전부터 근신하는 마음으로 포도밭을 기웃거리며 자질구레한 일들 부터 하면서 앞으로 할 일의 순서와 일의 비중을 머릿속에 입력중이다.
내 경우 농사일에 만족은 없다. 따지고 보면 농사는 한해 한해가 전혀 새로운 농사이고, 자칫 자만에 빠져 소홀하면 용케도 상응하는 댓가를 치룬다.
주변을 둘러 봐도 일시적으로 홈런도 치고 타격 4할을 넘길지 몰라도, 평균타율이 2할 5푼을 넘기는 이는 손에 꼽는다.( 농사도 주식처럼 예측이 아닌 대응의 문제다.)
내 몸속에서 겸손함이 빠져 나가는 순간 더이상의 만족감이나 발전이나 경제적 댓가도 무의미하다.
가끔 누군가를 위해 사는 듯한 착각에 빠지지만 결국은 자기만족이 시발점이다.
누가 뭐래도 난 날 위해 농사짓는다.
아무튼, 무엇보다 수세 저하를 감안해 내년은 올해보다 수확을 한달 가량 늦춰서 6월 10일경부터 수확(후기 가온)하기로 우선 정했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획득이고, 아무리 진보적인 정당도 집권하면 보수화한다.
오바마도 민주당도 결코 래디칼하거나 프로그레시브하지 않다.
오바마 역시 무엇보다도 자국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래도 전 세계에 파급될 변화와 보수와 편견을 거부한 미국민의 혁명적 선택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비록 경제위기가 가장 큰 선택 요인이라지만 폄하하고 싶지 않다.
이제 논두렁 깡패보다 못한 얼뜨기 카우보이는 거(去)하고, 새로운 젊은 엉아가 해결사로 짠하고 나타났다. 기회주의자 우리의 수구 꼴통들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람직한 변화의 물결이 제동 풀린 열차처럼 마구마구 내달리기를.
- Soul Asy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