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자전거를 타다
변명이지만 올 농사가 잘못된 것의 상당한 몫은 불편한 몸 때문이다.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방치할 순 없다.
델라웨어 수확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부족한 운동을 위해서 뭘 할까 궁리하다 적당한 도구가 필요할 듯 싶어 자전거와 마사이 워킹슈즈로 압축됐다. 먼저 인터넷으로 자전거 가격을 알아보고 거기서 구입할까 하다 며칠전 읍내에 장보러 나간 편에 삼천리 자전차포에 들러 중고 쓸만한 것을 알아보니 새 것의 반값이 좀 안되는 십만원에 손봐서 구입했다.( 아내는 봉 썼다고 연신 눈을 흘기며 마뜩해 하지 않는데 애써 모른체하고 거금 일십만원을 질렀다. 대신 올 소득이 형편없어 한달 기초생활비에 버금가는 운동화는 포기했다.)
이래저래 중고 인생이다. 휴대폰도 트럭도 심지어 농사용 작업복은 읍사무소 재활용센터에 가서 우유팩이랑 신문지, 잡지, 골판지 박스를 팔고 입을 만한 헌옷과 바꾼다. 누군가가 몸에 두르다 버린 것을 다시 입는다는 것이 찜찜한 이도 있겠지만 내 처지에 그런 생각은 접은지 오래이다. 함부로 입어도 부담이 덜해 새것 보다도 차라리 맘이 편하다. 아직 맘 한 귀퉁이에 new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제 분수를 모르는 것은 심각한 허영이란게 속차린 뒤의 내 생각이다. 자전거도 어차피 이동의 목적과 이를 위한 운동 효과만 충족시키면 되니까.
삼양라면, 기차표(만월표) 고무신, 칠성사이다(내 살던 곳은 오성사이다), 스마트 학생복, 신일 선풍기, 금성 라듸오, 럭키 치약, 라면땅,자야,새마을(환희,청자) 담배, UN(비사표) 성냥, 독립문 메리야스, 다이알(무궁화) 비누,쮸쮸바,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월남전 파병, 시월 유신, 혼분식,연속극 여로, 코메디 웃으면 복이와요, 박치기왕 김일, 벤베누티를 이긴 김기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던 케시어스 클레이, 만화영화 레오, 용감한 린티, 철인 28호, 마징가 제트, 황금박쥐, 홀쭉이와 뚱뚱이 소동, 5-0수사대, 대한늬우스, 불자동차 사생대회. 등등 삼천리 자전거를 떠올리니 당시 건재했던 것들이 금새 마구잡이로 생각이 나네. 잠시 더 멍청하게 벽을 바라보면 수십개는 더 떠오르겠다. 아, 옛날이여.
한때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집안의 주요 재산목록 중의 하나였다가 이제는 퇴물로만 여겨지던 자전거가 레져용품으로 조금씩 각광을 받더니만 급기야는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한다는 정부정책 수혜를 빌미로 주가가 기천원을 횡보하던게 수만원까지 가더니 아직도 이만원이 넘어 회사 시총이 3천억에 육박하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적당한 명분과 돈놓고 돈먹는 짜고 치는 고스톱.
다시 자전거 핸들을 잡은게 중학시절 이후니까 30년이 넘었다. 그저께쯤의 일처럼 생생하다.
자전거 타기가 얼마나 운동이 될지는 차치하더라도 (집과 하우스와 거리가 대략 칠팔백미터쯤 되는데 오늘도 종일 물주느라 예닐곱차례를 왕복했더니 허벅지가 뻐근하다.) 새삼 자전거 안장에 앉아 사물을 대하는 눈높이가 낯설지만 싫지가 않고 볼에 부닺치는 바람결이 상쾌하다. 사기를 잘 했다는 흡족함이 땀과 함께 온몸을 적신다. 매일 이삼십분은 어떻든지 자전거 드라이브를 할 참이다.
우선 몸을 챙겨야 허삼관처럼 피라도 팔러 다닐것 아닌가.
수양을 잘해서 그저 때가 되면 스콧&헬렌 니어링부부처럼 곡기를 끊고 조용히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찍은 나머지 사진들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