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재배사진방

백포도주 담그기 & 적포도주 숙성

대낮의호롱불 2009. 8. 11. 14:25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야겠지. 마지막 수확을 앞둔 지난 금요일 매년 여름쯤에 식구들 모임이 있는데 올 장소는 큰누님이 계시는 인천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간 뒤 강남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송도에 내리니 81년 여름 리어커를 끌며 아르바이트했던 유원지 문앞에 내려준다. 감회가 새롭다. 뻥한 눈으로 두리번거려 본다. 유원지만 낡고 방치되다시피했고 근처 허허벌판이 음식점 등의 건물로 꽉차 벽해가 상전이 된 느낌이다. 허허, 바닷가쪽으론 갯벌이 매꿔져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고 밤에 폭죽소리가 요란해 물으니 오늘이 인천세계도시축전 개막전야제란다. 거창도 하셔라. (중략)

다음날 예까지 왔으니 그곳 구경이라도 하자해서 가보니 간단히 말해서 돈이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씁쓸하고 불쾌하기조차해 그냥 TV로 보고 어디 외국 일인양 상상하는게 훨 나을뻔 했다. 뭐하자는 짓인지.

바벨탑처럼 솟은 건물들이 누군가는 거창하고 신기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촌놈의 눈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돈지랄로 밖에 여겨지지않네. 거기서 살 사람이 용타. 영원한 대토목공사의 나라. 바다를 매립해 첨단의 환경친화적인 신도시를 만든다는 발상을 안하는게 나을뻔 했어. 길 가는 멀쩡한 놈 흠씬 두들겨 패고 약주지 말고. 참나, 너무 냉소적으로 살면 안되는데. 아무튼 어렵사리 차아나타운을 찾아가 먹은 짜장면만도 못해.

  

 남은 포도를 되는대로 달라는 분의 성화에 일요일에 마지막 단동포도 수확을 마쳤다. 단동 포도도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되지않아 결국 사서 고생한 꼴이되었다. 올 장마만큼 지겨운 수확의 연속이었다.

에휴, 돛대 풀기가 이리도 힘이 들어서야. 스무상자쯤을 주고 나머지가 콘테이너박스로 다섯개쯤 나와 한 박스는 동네 아주머니들 드시라 주니 버선발로 반기며 맞이하듯 연신 고마와한다. 한상자는 냉장고에 두고 먹기로하고 나머지 세상자로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백포도주를 담기로 한다.

집에 돌아와 쉬지 못하고 둘이서 쭈그리고 포도알을 땄다. 세네카는 과육과 껍질이 분리되지 않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그런 스낵성의 맛이 신기해 주변 분들도 사지않았나 싶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것일수록 크런치한 식감이 포도알을 터트려 과육의 즙을 먹는 보통 포도와는 사뭇 다르다.

 

 웅크리고 포도알을 으깨자니 보통 고단한게 아니다. 머리를 써서 핸드블렌더를 이용해 포도알을 으깨니 쉽상 좋다. 보통 포도주를 담글 때는 포도알만 터트린채 발효를 시키지만 청포도는 색소가 없고 탄닌 성분도 부족하여 껍질을 이용하지 않고 포도즙만을 이용해야 한단다. 따라서 일차,이차 발효의 구분이 없고 탄닌이 매우 적어 숙성기간도 짧단다. 이번에도 잘되길 손모아 기대해 보자. 함께 손 모은 분은 나중에 연락주세요.

 

 으깬 포도즙은 상쾌한 상상과는  달리 푸른 기운은 금새 없어지고 산화되어 연갈색으로 금새 변색된다. 마치 한입 베어먹고 놔둔 사과가 누렇게 되듯이. 세네카도 제대로 익으면 표준당도가 18도 정도인데 더 되는 것도 많아 엠비에이로 담근 포도주가 좀 독한듯하여 다소 염려스럽지만 추가로 설탕을 가하지 않고 라이트한 백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그냥 해보기로 한다. 더우기 청포도는 탄닌이 거의 없어서 숙성과정중 청징이 쉽지 않아 인위적으로 벤토나이트 같은 청징제를  쓴다는데 심플하게 되는대로 먹기로 하고 이것 역시 생략한다.

 

 적포도주는 이차 발효가 끝난지도 보름쯤이 되어 침전물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숙성용 통으로 옮겼다.

사이폰을 구할 수 없어 근처 철물점에서 싸게 구한 주름호스(자바라?)를 깨끗이 잘 씻어 대신하니 그만이다.

빈들의 마른 풀처럼 시들은 내 영혼을 적셔 줄 포도주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약 29kg의 포도로 20리터 가량의 포도주를 예상했는데 포도식초를 만들기 위해 따로 조금 두었고 숙성용통에 올길 때 침전물 가까이의 포도주는 조금 남겨 뒀더니 19리터 생수통에도 다 차질 않는다. 다소 양의 차이가 나는 것이 서운한게 아니라 가능한 숙성용 통의 목부위까지 포도주를 채워야 최대한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줄일 수 있는데 그리 되지 못한 것이 좀 불안하다. 아무튼 뚜껑부위에 공기 차단기를 설치하고 주변을 랩으로 단단히 감쌌다. 이제 남은 일은 적포도주 발효용 생수통을 깨끗이 씻어 말려 청포도즙의 침전물이 가라 앉으면 바로 옮겨서 발효 시켜야한다.

8호 태풍 '모라꼿'이 대만에 기록적인 3천m/m의 폭우를 쏟아붓고 엄청난 피해를 줬다는데 이 영향으로 밤부터 강한 비가 온다니 긴장하고 오분대기 해야한다. 앞으로 풀 벨 일만도 창창하다. 윤달이 있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지 모르니 더위자셔 고생마시고들 몸 잘 챙겨요. 다음엔 무슨 건수를 빙자해 만나지?

 

 (추가합니다) 

 저녁을 먹고 청포도즙을 둔 통의 찌꺼기 막을 살짝 걷어내고 고운 체를 대고 같은 방법으로 생수통에 옮기는 일을 함. 이렇게 하는게 맞는겨?

 

 포도즙을 낸지 이틀만에 효모가 햐얗게 눈내리듯 막을 형성하고 발효가 되고 있다

효모가 가득한 찌꺼기 막을 걷어내자니 제대로 발효가 될지 염려가 앞선다.

 

 생수통에 다 옮긴후 에어락을 부착하고 밀폐시킨  상태. 그럼, 다음에 또.

오늘밤은 잔잔하게 Fleetwood Mac의 'Over My Head' 를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어요.이니면 Steely Dan의 Aja는 어떻겠어요. 제때 듣고 싶은 노래를 못 듣는 것도 아쉬움이 크군요. 이제 진짜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