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D님에게 1

대낮의호롱불 2010. 1. 2. 21:50

 

 

어제부터 다시 블로그에 농사 일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D님의 탓이 큽니다.

왠지 자기위안 삼아 하는 별볼일 없고 의미없는 짓인듯 싶어 훌훌 털고 일어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데 님께서 제 바지가랑이를 붙잡으신 겁니다.

그나마 님께는 그간 제가 올린 글이 도움이 된다는 것과 귀농을 고려(?) 중인데 막막하여 아무것이라도 얘기해 달라는 말에 바지도 올릴겸 잠시 서서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혹시 님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러한 것이니 이해해주세요. 

저나 님이나 비슷한 연배에 이제 자갈도 삭일 나이는 멀찌감치 지난터에 무슨 사정으로건 환경이 바뀌는데 뒤숭숭함으로 밤새 뒤척임이 어찌 남의 일로만 여겨지겠는지요.

꼼지락꼼지락 일을 하며 이틀쯤 생각해 봤지만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적잖이 망설였습니다. 그저 잘되시길 바라는 마음만이라도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되돌아 보면 저는 게으르게 살아왔고 별다른 성취도 이루지 못한 소위 성공한 농부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주저하게 만듭니다. 또한 못미더워서는 아니지만  갑갑하고 간절한 마음일때 제 한마디 한마디가 지나치게 각인될까도 염려됩니다.

님께서는 모처에서 귀농교육도 받으셨다는데 저는 말그대로 무작정 농촌으로 내려왔습니다. 직장을 그만둘 즈음에 제가 이제 몸을 맡길 곳은 농촌이란 생각 밖에 없었죠.

나름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이며 생산적이고 자연을 느끼고 사유하며 조용히 살 곳을요.

무엇보다 아내의 반대가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요. 아직껏 제 부모형제들은 바쁜 와중에도 저를 염려한답니다. 저는 지방 도청소재지에서 자랐습니다.엄밀히 말해 귀농이 아닙니다. 어찌어찌하여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살게된 것이어서 U턴하여 농촌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손에 흙 한 번 안 묻혔기에 다소 무모한 선택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인생의 1/3은 제 고향에서 1/3은 서울에서 나머지는 이 곳에서 머무르고 있네요. 제 주변의 시골출신 친구들은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농촌이란 곳은 마음으로야 푸근하긴해도 여전히 결핍과 빈곤과 박탈과 고리타분함과 갑갑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지 훗날에도 되돌아갈 기미가 없어보입니다. 다들 그런가요?

가끔 만나서 그간의 제 처절한 전투담(?)을 얘기할려고 폼만 잡아도 Fleetwood Mac의 Never Going Back을 불러대며 귀를 막아버립니다. 야들이 아직 덜 늙었나봅니다.

만약 님께서 되돌아갈 연고지가 있다면 똥개도 홈그라운드에서 50점 먹고 들어간다는데 출발점이 저보다는 나을듯 하네요. 실제로 저는 96년에 이 곳에 왔는데 얼마후 IMF사태 이후 한바탕의 똥개떼들(?)이 몰려와 더욱 어수선해진 느낌도 받습니다. 게다가 갈수록정부정책과 맞물린 대규모 전업농화 추세로 삭막함이 더해갑니다.

앞으로도 농촌이 수탈의 대상에서 벗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풍요로운 기회의 땅이란 생각까지 앗아간 상태는 아닙니다. 

다음으로 D님께서는 제가 이미 십수년전에 결행한 일을 이제서야 하자니 염려가 크실텐데 이쯤되면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염려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나이인 것은 인정해야할 것같습니다. 오직 희망과 간절한 바람만이 자신을 바르게 인도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되돌아 보면 언제든 뭘 하기엔 나이가 들었던 것 같군요.잘 아시겠지만 시골에 오면 나이 오십쯤이면 한창 청년대접하니 벌써부터 꾸부정하게 탑골공원 맴돌 걱정은 일단 접으시고 차분히 Ten Years After를 모색해보세요.

 

  오늘 분량의 Capacity를 넘어섰군요. 머리도 가물가물하고 한데서 꼿꼿이 허리 세우고 독수리타법으로 글을 쓰자니 다시 허리도 아파옵니다.

그나마 오늘 눈도 녹고 날이 풀려 간만에 산보도하고 자전거도 탔는데 곁에 있는 아내가 오늘은 뜸안뜨냐고 물어옵니다. 아내의 인내심이 동나기 전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야겠습니다. 어쩔수 없이 제 속살을 보이자니 부끄럽기도 하고 횡설수설해서 심난함을 오히려 부추기지는 않았나 염려도 됩니다. 시간되는대로 이어서 다음에 또 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