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수액이동 시작
델라웨어 밭에는 서서히 봄이 오고 있다. 예년처럼 중순경 내피 피복을 마치고 일단 보온에 들어간지 열흘 남짓인데 풀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포도나무가 싹트기 전에 풀이 지나치게 무성해 풀베기가 고단해 올핸 늦가을에 한번 더 예초했는데도 다를 바가 없다.
며칠 전에 찍은 사진인데 예상 밖으로 빨리 수액이동이 시작되었다. 결과모지 절단면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더니 동남쪽 나무들부터 수액이 흐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쪽 일부 나무도 물이 흐른다.
당초 올 겨울농사는 수세회복을 위해 늦추기로 하고 일이 진행되었지만 올 포도시세가 조기 출하분이 더 시세가 좋아 농가의향조사도 조기재배로 기울었는데 추위가 일찍 찾아오고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다시 뒤로 늦추려는 경향이 있어 내년도 일찍 출하하는 것이 소득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시 몇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세회복이 먼저라는 생각에 초심대로 하기로 한다.
계획대로 올해는 몇년만에 휴면타파제 처리도 하지 않았고 가온도 최대한 늦출 생각이다.
포도나무가 기운을 회복하여 다시 3.3m2당 6.5키로 이상의 포도 수확이 될 때까지 그리할 생각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있기 전인 지난 15일경에 3중보온이 마무리 되어서인지 요며칠 추위에도 오후늦게 지온은 15도까지 오른다. 근처 시설재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딸기 품종이 이제 대부분 설향으로 바뀌면서 초촉성재배가 이뤄져 일찍부터 수막시설로 보온이 되다보니 지하수위가 빨리 떨어질까봐 내 마음도 급하기도 하고 늦가을 건조한 날씨가 지속돼 몇차례 20밀리 이상의 충분한 관수가 다소 도움이 됐나 보다.
지난 2006년에 보온시기도 비슷했고 휴면타파제를 쓰지 않았는데 수액이동은 이듬해 10일경부터 시작되었는데 다이어리를 뒤져보니 그 때가 올해보단 춥긴 추웠다. 아무튼 지켜볼 일이다.
땅의 온도가 오르고 수분이 충분하니 풀도 크지만 서서히 설치류들도 설친다.
주인께서 친절하게 접시에 쌀쥐약을 담아 출입문 앞에 드시라 놓아둔다. 구멍의 크기로 봐서는 모퉁이에 바짝 기대어 숨어 있다가 어벙한 톰을 후라이판으로 냅다 갈겨 꼬락서니를 호떡으로 만들어버리는 제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커보여 그냥 주먹으로 냅다 한방 갈겨도 불쌍한 톰은 그대로 떡실신할 것 같다.
쥐들도 경계가 심해 쌀쥐약 먹기를 정중히 사양하면 저들 스스로 구멍 입구를 다시 흙을 모아 메운다.(사진생략) 쥐가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면 자칫 아내가 떡실신하고 하우스 오기를 꺼려할 참이다.
요즘 여기저기 살피며 유인철선(알미늄도금 강선)에 감긴 덩굴손을 제거하는 덕청소를 틈틈이 하고 있다.
전지하며 세심히 주홍꽃날개매미 알을 제거했다고 여겼는데 다시 살피니 몇 군데 알집을 발견해서 제거했다.
물탱크 주변과 온풍기 주변에 끈끈이 트랩을 뒀는데 벌써 매미충이 잔뜩 붙어 잡혔다.
포도 싹이 나기 전에 해충의 밀도를 낮추는 일이 우선이다.
끈끈이트랩( bugscan)은 내가 하우스를 짓고 첫 농사가 미니토마토 였을때 네델란드 코퍼트사의 나투벌과 함께 나방 방제를 위한 훼로몬트랩과 온실가루이 방제를 위해 썼는데 그게 지난 97년이니 벌써 제법 되었다. 그래도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면서 무던히도 농약을 썼다. 당장 내가 지쳐 못할 짓이었다.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농약(화학합성농약)은 쓰지 않겠다 맘 먹었다. 나무를 심은지 3년차인 지난 6년전쯤인가에 조금씩 수확을 할 시기가 임박했는데 내 예찰이 소홀해 응애가 순식간에 번성해 당황해 하다가 마침 세실에서 공급하는 천적 칠레이리응애가 생각나 연락해 천적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긴했지만 아무튼 그럭저럭 효과를 봐서 계속 쓸 생각이었는데 담당자가 날 생각해주는 양 재배면적을 부풀려 보조금으로 자부담을 줄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한다. 망할 회사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후로 사용권유 전화가 계속 있었지만 쓰지않고 천연 농약 방제로 돌렸다. 알량한 돈이지만 먼저 자부담후 환급받기로한 보조금은 자기네 사정을 내세워 2년여 질질 끌다 겨우 받아냈다. 친환경인증 받은 작자가 어슴푸레한 개와 늑대의 시간에 나타나 제 밭에 제초제를 뿌려대면서 천적을 쓴다고 비닐하우스 밖에 '천적온실'이란 스티커를 자랑스레 붙여 놓았다. 친환경재배를 하겠다는 철학적 소신도 없는 이가 공짜면 양잿물도 먹겠다는 식으로 대충 부풀리고 둘러대 보조금으로 대부분의 자부담을 충당하지 않고서야 그리 할 작자가 아니다. 주식거래를 하는 분이라면 잘 아는 일이지만 장밋빛 친환경농업의 선두주자로 각광받으며 한때 주가가 17000원을 넘어 시가총액 2천억이 넘었던 회사가 주가는 1/10토막 났고 경영자는 횡령과 분식회계로 구속되고 상장폐지 심사를 앞두고 있다.
판매수량을 허위 조작하고 부당으로 해먹은 보조금만 90여억원이 넘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나이브한 투자자와 진정으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기 위해 도움을 받던 이들이다. 당장 올 7월부터 보조금이 폐지되었는데 자부담으로 계속 친환경농업을 고집할 이가 대체 몇이나 될까. 그런 고약한 경영자나 공짜 좋아하는 농민때문에 피해는 선량한 자들이 받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피땀흘려 꾸준히 이룩한 민주화가 삽시간에 박살나고 지난 끔찍한 시절로 금세 회귀하듯이 우리나라 친환경농업도 이처럼 취약하기 이를데 없다.
보조금으로 연명한 세실은 매출감소와 수익성악화로 앞길이 뻔하다. 돈돈하며 죄의식 없는 이가 너무 많다.
한 놈은 깜냥에 배웠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굴러먹어서, 다른 한 놈은 너무 못배워서 잘잘못도 못가려서. 얼마전 한미FTA조항을 점 하나 고치지 않겠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결국 미국의 고도의 전술(?)에 휘말려 개정을 하고야 말았는데 농민신문을 보니 어느 자리에서 이른바 '다방농민' 발언으로 농민단체가 발끈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농민 비하한다고 성내지 말고 켕기는 짓을 안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다들 내가 안해먹으면 누군가가 해먹을텐데 그 꼴을 눈 뜨고 어찌 봐 하는 눈치다.
자존감은 누가 주는게 아니고 스스로 여기는 것이다.
(너무 깨끗한 소리만 해서 물고기 한마리 못 놀겠어. 덧붙이자면, 전 농민의 대표성을 갖는 자가 못됩니다.)
지난 밤에 내린 함박눈에 덮힌 마당의 블루베리 묘목들.
더이상 이런 저런 얘기는 각설하고 얼마전에 우울하게 단동의 포도나무를 베다가 불현듯 머리를 스친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설마하니 이런 말이 위안과 격려가 될 줄이야.
내년도 건강하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