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살기
열흘 전쯤 사진이다
정신없이 사는건 아니어도 잠시 한눈 팔면 일이 밀려 고생이고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보내면 그렇다고 급할 것도 없는 조용한 나날의 연속이다.
눈 뜨면 나가고 어둠이 내리고도 한참 후에 돌아오니 돌리 파튼양이 알면 놀라겠지.워킹 나인 투 파이브~
아주 잠깐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인들이 반세기 넘게 지배하는 병영국가에서 일사분란한 통제와 기동력이 생명인 시스템에서 도리어 가슴 아프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왜 일까.
식물과 동물의 구분이 운동성 여부인데 식물도 외양은 고착된듯하나 생존을 위한 좋은 조건을 위해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다.토마토는 오이만큼 예민하지는 않더라도 생장점은 종일 햇빛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양성굴전(錢)성? 양성굴권(權)성?
대학시절 강의중에 모교수가 동료들과 술집에 들르면 마담이 인삿말로 아이구 쩍쩍이들 오셨네 했단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난 그 여인과 술한잔 하고픈 생각이 간절했었다.
지금은 한자어들이 퇴보하고 왠만하면 영어식 표현이 대세라 협업,협동이라고 해도 될 말을 콜라보레이션이라 해야 폼나 보이듯이 책이나 신문에 한자어 투성이고 세로로 삐딱하게 글을 읽던 시절에는 왠만하면 관형사 적(的)을 적절히 구사하지 않으면 배운 사람 축에 끼지도 못했다.
각설하고 우리 현대사에서 이것의 백미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닌가 싶다. 얼마나 그럴싸한 언어의 유희인가.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왜 굳이 한국적 민주주의인가. 한때는 이 말에 토달면 죽음이었다.
아직도 한국적 민주주의는 진행중이다.
나는 더이상 나라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
살아오는 동안 실망과 분노가 켜켜이 쌓여 냉담함만 남았다.(우리 살람 투사 아니여요 )
겉으로는 통일은 대박이라 떠들어도 분단모순을 이용해 제 잇속 챙기며 정권 유지하는 아이리스 같은 놈들이고 국민을 하늘같이 떠받들듯 얘기해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만 남는다.들러리 숫자놀음일뿐 더 이상 민주주의는 없다고 여긴다.
지난 여름에 읽은 책의 한구절:
"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가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하였던지 다른 말은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잇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 창작자유의 조건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에세이 208쪽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힘들었던 독재정권 시절에도 설령 삶아죽임을 당할지라도 분연히 불의에 맞선 지식인들이 있었기에 국민들이 귀감으로 삼고 좇았는데 이제는 모두 체력단련 하러 작대기 들고 필드에 나가거나 심신수양을 위해 산행을 나가셨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그사이 세상은 얼마나 불의가 만연하고 천박하고 상스러워졌는가.
중학생이 되자 좀 어른스러운 흉내를 내겠다고 아버지와 삼촌이 보고 난 신문을 기웃거릴 즈음 아직도 기억이 선명한 이름이 있다.페트리샤 허스트. 그녀는 미국 언론 재벌의 딸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 되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짠하고 나타나 은행을 털다 체포되었다 한편의 영화 같은 얘기다.아마도 켄디스 버겐이나 알리 맥그로우나 캐서린 로스가 어울릴게다.(실제로 영화화 되었다는데 보지 못했고 클린턴 정부때 사면 된걸로 알고 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하려는 것에 오히려 동조화 하는 것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던데 우리들 역시 그렇지 않은가. 부자를 섬기고 권력자를 섬기고 입신양명의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가 되지 않았나.
하기사 여기서도 동네 이장이나 시의원의 권세가 대단하던데 완장 차면 참 좋은게 생기나 보죠.
논두렁 깡패보다 못한 작자들이 설쳐대는 걸 보면 인간은 본디 구제불능인가 보다.
그 성중에 의인 오십명이 있을지라도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 창세기 18장 24절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 전도서 8장 14절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