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July Morning

대낮의호롱불 2010. 12. 2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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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薄相得 .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래 사는 것은 미덕이 못돼.

 

별안간 햋빛 가득 쏟아지는 7월의 아침을 몸서리치도록 그리워하며.

 

   낮에 일을 하다말고 자재를 살게 생겨 근처 영농조합에 간만에 들렸더니

사무장아줌마가  반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길래 적당히 맞장구치며 담소를 나누던 중에

도처에 기강이 해이해져서 학생이 선생을 데리고 노는 지경이 되었는데 전교존지 뭔지 하는 것들은

학생체벌도 금지하고 나라 꼴이 어찌될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진심어린 염려를 내게 비친다.

그럼 그 반대로 계속되면 수백배 수천배 더 끔찍한데 어쩌라고.

지엽적인 부작용을 내세워 인권을 무시하는 강압적인 처사가 학교와 집에서 버젓이 자행된다면

그게 로보트 양성소지 더이상 나눌 수 없는 개인의 소중한 인권을 가르치는 학교겠어?

30년도 더 된 내 중학시절의 두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에피소드 #1

 발랄한 초딩을 마치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밀고 뻣뻣한 제복을 입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제 어른이 되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긴장도 잠시뿐.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서는 틈틈히 열심히 놀았다. 

때는 바야흐로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 각하가 이 땅의 부흥을 위하여 제3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추진 중

이었을 게다. 경공업중심에서 중화학공업위주로 산업을 육성하던 때. 우리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몇차 경제

개발계획이 어떻게 추진되는지를  열심히 외워댔다. 마침 쌀자급책의 일환으로 혼분식장려운동도 일었다.

조회시간은 물론 불시에 도시락을 열어서 선생이 밥 한덩이를 떼어내어 정부시책에 잘 따르는지 일일이 보리알을 세어 어기면 혼을 낼 정도였다. 1학년이 거의 다 지나는 10월말쯤 언젠가 내가 재미있어 하는 사회시간에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사회선생은 갑자기 혼분식 검사하게 모두 도시락을 꺼내란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더니 글쎄 내 도시락을 보는데 온통 흰쌀밥이라 나도  깜짝 놀랐다.그제서야 아침에 도시락을 건네주던 엄마의 환한 미소와 점심밥 맛있게 먹으라는 소리가 에코우로 귓가에 맴았다.

 곧바로 나는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그 시간 내내 급우들 앞에서 정부시책에 역행하는 버러지 같은 존재로 매도되었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려 아무런 변명의 말도 못했을 뿐더러 그럴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방목하듯 풀어놓고 키우는 자식들이 행여 잘못될까봐 노심초사 하던 소심한 공무원이셨다. 당시 야당지인 동아일보를 보는게 알려져  찍힐까봐 한국일보로 바꿀 정도로 정부시책에 외관상 선선히 따르던 분이다. 그런데 그 자식은?

맥없이 집으로 돌아와 숫가락도 안댄 도시락을 보며 엄마는 투덜거리셨다.

"썩을 놈의 자식, 지 애미 생일이라고 모처럼 흰쌀밥 해줬더니 입도 안대!"

 

에피소드 #2

2학년이 되었다.

2년후면 고입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진짜로 놀면 안된다. 그래도 열심히 놀았다. 케세라 세라.

2학년때까지만 해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은 여전히 전교 20등 안에 들어 별 걱정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좋은 입시성적을 내야만 명성이 유지되니 나름 긴장하는 눈치다. 그놈의 명성이 뭔지.

국영수외에도 농업, 기술과목 따위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 농업선생은 소위 그 지역 명문고를 나온 것을 대단한 위세쯤으로 여기고 뻐겼다. 내 타입이 아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농업선생은 자기 과목에 열중하도록 꾀를 내어 무작위로 호명하여 전 시간에 배운 것을

리마인드시키기 위해 퀴즈식 문제를 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틀리게 답하면 곧바로' 니 애미는 너같은 놈 낳고 미역국 처먹었다니'하는 비난이 어김없이 되돌아왔다.

그 시간만 되면 몸이 떨리고 속이 부글거렸다. 모두가 그랬다. 용케도 난 그런 비난을 한번도 안받고 넘겼지만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모두가 농업시간 전에는 이런 모욕을 받지 않기위해 밑줄 그으며 열심히 외웠다. 국영수보다 훨씬 열심히. 하지만 불행히도 그 해 내내 수업시간마다 누군가 희생양이 생겨 그런 모욕의 말들이 교실을 퍼져나갔다. 우리는 그 소리를 자동으로 머리에 되뇌었다. 이런 곳에서 자기애가 어떻게 싹튼단 말인가.

나는 그 때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학생으로서의 당연한 바람을 기꺼이 버렸다.

아니, 뉴햄프셔가 돼지품종이면 어떻고 햄프셔가 닭품종이면 어떤가. 그걸 모른다고 저를 낳아준 어미를 욕보인단 말인가. 그런 비열한 방법밖에 없었는가. 그 놈은 선생이 아니었다.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악마다.

35년쯤 전의 일인데도 그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와 지금 내 몸이 부들거린다.

목적이 결코 수단을 합리화할 수 없다. 형식과 내용은 하나이다. 오랜동안 그런 교육이 횡행해왔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이기 이전에 교양있는 인격체이어야만 학생을 또다른 인격체로 대접할 수 있다.

그말이 정 어렵다면 정용진이처럼 고객이 원한다면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돈을 더 벌기위해서는 피자 한판도 최선의 가격으루다 모시는 철저한 비즈니스마인드를 배워야한다.

학생을 소중한 고객처럼. 모두가 썸머힐로 갈 수는 없으니까.

내가 오늘 많이 흥분했다.  난 좀 더 고독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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