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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예가를 꿈꾸며

대낮의호롱불 2016. 2. 17. 22:21


  gnerous(?)한 나날의 연속이다. 무기력하다. 언제쯤이나 다시 generous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2년후에? .


전처럼 베타티니를 심을 준비를 하고 테스트를 위해 무지개토마토 종자 한봉지를 사서 정식전에 따로 파종을 했다. 그리고 품질 비교를 위해 육묘장에서 큰토마토도 몇주 얻어서 따로 심고 이번에 2단연속적심 재배 테스트도 해볼 생각이다.



작년과 같은 일정으로 진행 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는 어릴적 가족 모두 함께 본 '산'인데 어렴풋이 탐욕스런 동생이 크레바스 나락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옛날에 헐리웃 외화는 주로 서부개척시대의 총잡이들 이야기나 기병대들이 인디언들과 싸우는 영화에서 차츰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를 이루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인한 콤플렉스와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영화가 많이 나왔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래 1억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백인들에 의해 절멸되고 지금은 전시용으로 소수만 보관(?)된 안타까운 현실인데  나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서슴없이 죽이는 성조기 깃발 휘날리는 기병대를 신나게 응원하며 보지 않았던가. 기막히지 않은가.



이제 농사 지은지 20년이 되어간다. 세월이 유수처럼 흐른다.

나는 대박이라는 말만큼은 아니어도 아무튼 농민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농부가 좋다.

더 바람이 있다면 훗날 농산물의 품격을 예술품의 경지에 올린 농예가(農藝家)들중의 한사람으로 평가 받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목표는 늘 원대하다.



멍멍이 발도장

 눈이 내려서 산보 겸 걸어서 하우스로 나섰다가 햇볕에 눈은 사라지고 볼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강아지 무리들의 발자욱을 찍어 보았다.

전생이 개 였다는 아내는 또 이사진을 보며 연신 헤헤대겠지.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와서 땅을 사고 하우스를 지은 때만 해도 농로가 포장 되지 않고 주로 경운기로 농산물을 날랐는데 그후 몇 년 쯤 후에 포장이 되었는데 그때의 자취다. 아마도 최00씨네 곰탱이 무리들의 발도장일게다.



늘 별 생각없이 다니는 길도 밤새 소리없이 소복히 눈이 쌓인 길에 첫 발을 내 디딜 때 웬지 설레지 않던가.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길 고대하며 오늘은 두 곡을 선사합니다.

내가 학창시절에 듣고서 많이 각성을 한 노래인데 좀 더 긴장이 필요한 분은 Roger daltrey의 After the fire를 선사합니다. 박력있는 보칼중의 한사람으로 여겨지고요, 아직 담배 못 끊었으면 끊으세요.

그리고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2번 2악장을 선사합니다.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