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재배사진방

바퀴의 발명

대낮의호롱불 2009. 4. 11. 23:39

 

 인류문명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중 인류가 발명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불과 바퀴라던데 살면서 실감하시는지. 우린 간혹 누군가에게 절실한 신세를 지고 살면서 감사는 커녕 불감증에 걸려 무덤덤하지는 않은지. 작년에 단동 일로 하도 고생을 해서 인터넷을 뒤져 한참을 기달려 그제 받아 쓰기 시작했는데 투박한 중국산이기는 해도 단 몇시간의 작업만으로도 값어치를 다한 느낌. 엉덩이가 좀 아프기는 해도 어정쩡하게 일하며 골병들고 일 능률떨어지는 것에 비하면 황송 감사할 따름이지 뭐. 바퀴가 갖는 본래적 기능만으로도 새삼 감탄하고 있다. 현대 문명의 꽃도 어쩌면 자동차와 인터넷과 휴대폰이 아닐까. 이것들 때문에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얼마나 바뀌었는가. 저 장난감 같은게 날 해피하게 하네. 아주 편해요 as snug as a bug in a rug.

 

 일이 줄어들 기미는 커녕 밀리니 정신이 없다. 단동의 삼색포도도 발아가 시작된지 한달이 넘어서 조만간 개화가 시작될텐데 델라웨어 신초 정리를 대략 마친 아내랑 급한 마음에 어제부터 작업용 이륜의자에 앉아 신초세력이 센 것부터 순지르기를 하며 곁순도 제거하고 추가로 약한 것은 열매도 따주고 있다. 오늘까지 노스레드, 노스블랙은 대략 정리를 마치고 이제 세네카가 남았다.

 

 노스블랙은 올 수확은 거의 기대하지 않은채 순정리하고 추가로 열매도 따주었다. 열매도 동해를 입어 건드리면 우수수 떨어진다. 으악 산산히 부서지는 내 꿈이여. 요며칠 돋아나는 순 말고는 도대체가 정상이 아니다.

그래도 몇몇 나무는 타격을 받지 않았으니 맛은 보겠지. 가끔 체념으로부터 마음의 화평함과  새로운 각오가 싹틀 수도 있겠구나 싶다. 다 주님의 뜻이라 여기지 뭐. 교회다니냐고요? 아뇨.

 

 세네카는 작년에 비해 거의 세배 가까운 착과량이어서 1차 순정리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라 내일부터 순지르기하면서 좀더 솎아줄 예정이다. 내 바람보다 신초 세력이 느낌상 10-20%정도 약한듯 하다.

 

 여하튼 필름은 계속 돌아갑니다.

신초 유인을 어느정도 마친 델라웨어밭 전경. 포도송이도 덕 아래로 내려오니 그럴듯한 포도밭처럼 보인다,

일정상 현재가 발아일로부터 두달이 되었으니 5부능선을 막 넘어선 거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채로.

단동 일은  순지르기를 하고 개화기에 조심스럽게 관리하면서  델라웨어는 일일이 꽃털기를해서 포도송이를 깨끗이 하여 송이정리를 한뒤  추가로 지베렐린 2차처리를 해야한다(1차 처리는 씨를 없애기 위함이고 그대로 두면 씨가 있는 상태보다 포도알이 더 작아지므로 비대목적으로 2차 처리를 한다. 2차 처리시기는 원칙적으로 세포분열기가 끝나기 전인 개화종료후 10-15일이내에 해야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긴 힘들다 )

  

 꽃떨이(화진)로 이빨빠진 옥수수마냥 엉망이 된 포도송이 모습. 여기저기 널린 이런 송이들을 볼때마다 속에서 불기둥이 솟는다. 지베렐린처리 시기나 온습도 조건으로 포도송이를 적당하게 늘리기도 하지만  보기좋을 정도로 다소 너슬하게 송이를 만드는 것도 내 나름으로 중요한 기술인데 올해는 여러모로 오버하고 타이밍을 못맞춰 엉망인게 많이 생겼다. 레프트 헤딩 라이트 헤딩하며 끝까지 해보는 수 밖에. 이미 손실은 불가피하다.

변명 하나 할까.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내게 충고랍시고 농사를 업으로 삼는 한 모험을 하지 말란다. 절대로.

그들은 조그만 변화도 두려워 한다. 오래된 관행을 답습하고 검증되지 않은 것은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물론 원론적인 길잡이에 충실하되 자신의 느낌과 판단을 도외시한 채 농사짓는 것은 제 농사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 농사지어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우기 때론 댓가가 가혹해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한 한발자욱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시도는 1년에 한번밖에 못한다는 사실을 차라리 즐겨야 한다.

차분하게 만약 이 지경이 되도록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까. 아마 지금보다 더 낫진 않았을 게다.

  

 MBA도 개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십수년전 내 직장다닐때 운좋게도(?) 특별한 미션없이 약 2주간  유럽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당초 일정에도 없었지만 파리를 살짝 끼워넣어 만 이틀간 파리 시내를 쏘다녔다.

숙소는 샹젤리제 근처였고 봉천동 고갯길만 못한 몽마르트언덕도 가봤고 노트르담사원도 개선문도 유명 디자이너 뷰티끄가 있는 곳도 기웃거려 보았고 똥물같은 쎄느강에 떠있는 유람선도 보고 에펠탑에 올라 파리 전경을 바라보며 폼나게 저녁식사도 하였다.

식민침략기의 전리품인 오벨리스크를 바라보며 몇해전 재미나게 읽었던 다빈치코드에 묘사된 루브르박물관에도 갔다.(왜 출입문을 유리로 만든 피라밋식으로 했는지는 좀 의아했다.아무래도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나 미련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미술시간에 본 많은 그림,조각들이 있었지만 아프리카관,아시아관을 따로 둘 정도로 그 안에 전리품은 가득했다. 물론 가치를 음미할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작품을 둔다는 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치다 우연히 많이 본 듯한 그림에 눈이 멎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였다. 보기보다 그림은 작고 평범한 아줌마를 그려넣은 그림이었다. 근데 저 그림이 왜 유명하지?

솔직히 얼마만 주면 살 수 있는 고흐의 모조화가 차라리 내게는 더 구미가 당겼을지도 모른다. 난 별 감동없이 박물관 구경을 마쳤다. 돌아와 절실히 느낀 것은  내가 배우고 느끼려 하지 않는 한 영영 그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마따나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주면 뭐하나.  나는 돼지다. 가치를 못보는 똥돼지.

사람들은 명품을 찾는다. 명품을 볼 안목을 키우기보다 명품이라 여겨지기에 기를 쓰고 찾는다. 몽블랑 펜으로 싸인한들 졸필이면 가치가 퇴색하고  유명디자이너의 옷과 장식품으로 몸을 휘감은들 그 사람에게서 밝은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면 말짱 황이다.  농사 지으며 가끔 가치로운 것들이 뭔지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볼 안목

을 키우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졸렬하고 유치하지만 블로그에 낙서하듯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것도 예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자랑할 생각은 일푼도 없으니 비웃지는 마시라.

 

 

'포도재배사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델라웨어 GA 2차처리 시작  (0) 2009.04.22
델라웨어 송이털기 & 삼색포도 개화 시작  (0) 2009.04.16
꽃떨이가 날 떨게 만드네  (0) 2009.04.04
마누라 죽이기  (0) 2009.03.29
난 꽃이 아니야  (0) 20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