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재배사진방

고백 1

대낮의호롱불 2009. 5. 21. 23:27

 

 며칠전에 사진을 몇장 찍어놓고 주저하다 이제서야 올린다.

블로그를 만들고 흘러간 팝음악과 어쭙잖은 글과 사진을 간간히 올린지 벌써 260여일이 지났다.

요즘도 매일 수백 분이 찾아와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익히 짐작하듯이 당초 이 블로그를 연 취지는 농부로서 연중 수없이 생산되는 농산물이 단지 돈 얼마로 간단히 교환되고 소비되는 물건 이상의 가치를 지닌 소중한 생명체임을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

물론 나는 경제적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처지도 아니어서 이를 통해 장차 가능하다면 좀더 경제적인 이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은근히 있었던 것도 숨기지 않겠다.

오래 전에 상추 농사를 지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값이 널뛰기를 하니 가치의 혼돈이 일었다. 또한 불특정인이 소비한다는 점은 애써 지은 결과가 단지 돈으로 바뀌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점은 썩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다. 포도농사도 마찬가지다. 그간 공판장에 출하했으니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중도매인도 있을 것이고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알지 못한다. 종일 벽을 바라만 본 적이 있는가.

난 어떤 식으로든지 내가 애써 지은 농산물을 통해 소비자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 나대로 좀더 안전하고 맛있는 이른바 제대로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국민을 섬겨야 하고 교사라면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실력과 꿈을 키워주고 인성을 다듬어 줄 좋은 품성이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  

 농부도 농사 실력이 있어야 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아마추어리즘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의 엑스퍼트(expert)가 되겠다는 것과는 상충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흔히들 농사는 인생을 달관이나 한듯 자연 순응적이고 어쩌면 체념까지도 운명이라 받아들이며 그저 묵묵히 일하는 수동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겠지만(실제 농민도 그런 이가 많다)  내 성질머리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 감성이 잘못 되었든지 여기기에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그저 자연을 벗삼아 이슬만 먹고 살거면 시설재배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

농사를 '짓다'의 사전적 의미가 재료를 들여 밥,옷,집 따위를 만들다라고 풀이 한다면 농부의 좀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말 그대로 그저 생긴대로 거둬 들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말이 길어 졌는데 올해에 나는 이런 점에서 부족함을 여실히 느낀다. 누가 날 어떻게 평가하기 이전에  스스로 여기기에 자격 미달이다. 뭘 믿고 그리 우쭐 댔는지 모르겠다. 뼈저리게 반성한다.

 이런 실력으로 계속 무슨 문자 뜻풀이 하듯이 농사 운운하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가소로운 일 아닌가. 

 

 이제 수확이 멀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며칠 빠른 다음주말께는 첫수확이 가능하리라 본다. 행여 올린 사진을 보고 부담을 느껴 포도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라.  

난 길거리에서 술집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가 아니다. 더우기 올 농사는 예년만 못해 선뜻 권할 자신도 없다.

본격 수확이 시작되면 바빠서 사진조차 못올릴성 싶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더듬더듬 몇자 끄적였더니 몸에서 열이 난다.  아참 허리가 아파 등에 핫팩을 대고 있어서 그랬나.

더할 나머지 얘기는 내일이나 모레쯤 하기로 하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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