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신 분들께 사진으로나마 포도를 드립니다. 단, 커피는 제가 마실 겁니다.
어쩌면 이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 허망하기조차
합니다. 사진 한장은 때로 모든 것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도 많죠.
수산 손탁(Susan Sontag)가 그랬다던가요. 오늘날의 모든 것들은 한 장의 사진속에서 끝나기 위해 존재한다고.( on Photograph ) 그런가요.
포도가 잘 익어 수확한다는 것만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리조리 잘 살핀후 포도송이를 가위로 자르는 소리는 묘한 쾌감과 함께 이제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수확이 다 끝난 휑한 포도밭을 바라보기가 아쉬워 그냥 달아놓고 바라만 보고픈 생각마저 듭니다. 미쳤어...
두시간여 동안 살펴서 따느라 오늘 첫 수확량은 이만큼입니다.
혹여 덜 익은 포도를 실수로 잘못 따다간 곁에서 준엄한 꾸짖음이 곧바로 기다리니 긴장해야 합니다.
출하를 위한 포장은 종이에 한송이씩 싸서 1키로 상자에 담거나 200그램 단위로 계량해서 접시에 담아 2키로 상자로 시장에 출하하는데 비교적 고가여서 구매단위가 소량씩이라 후자가 주를 이룬다.
이 포장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합니다. 힘들면 내가 농부인지 상인인지 분간이 안서지요.
아내께옵서 다년간 숙달된 조교솜씨로 일년만에 다시 화려한 랩퍼의 자리로 돌아와 솜씨를 재연하시다.
접시를 상자에 담고 친환경인증 스티커를 붙이면 포장작업이 끝난다. 오늘은 첫 수확이라 16박스 나왔다.
이제 오후 늦게 포도 수집차량에 실으면 이 포도는 누군가를 위해 가락공판장으로 향한다.
온 천하를 숙연함이 감싸고 도는데다 그나마 위로 받을 노래를 올리려 해도 잘 안되니 불편함이 더하군요.
다시 밭에 나가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