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재배사진방

목포는 항구다

대낮의호롱불 2009. 6. 19. 21:29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던가.

며칠전부터 꽃이 핏기를 잃고 노릇노릇해지더니 급기야 하나 둘씩 지기에 아쉬워 찍어놓은 사진이다.  

지난달 12일경에 꽃이 피어 근 달포 가량을 꽃을 보았으니 기대 이상으로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직도 맨 나중에 핀 꽃은 마지막 잎새처럼 지기가 서러운지 며칠째 버티고 버티다 어제서야 졌다.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어제 델라웨어 수확을 마쳤다. 짐작대로 예년보다 30%가량  감수하였다. 일주일 이상 빨리 마쳤다,

올 여름은 유달리 덥고 지루한 나날들이겠다. 최선을 다 했는가?  아니. 그럼 게을렀는가? 그것도 아니.

며칠을 망설이다 어렵사리 컴퓨터 앞에 큰 맘 먹고 앉은거다. 아시나요. 밀려오는 자괴심.

내년 농사가 다시 제대로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충분히 고통주고 자책할게 분명하다.

 

 지난주는 유달리 피곤했다. 장마를 앞두고 점차 날이 후덥지근해 지는데다 농사가 안됐으니 즐거우리 만무한데 이에 보태어 바로 뒷 논에 농사 짓는 친구가 얌전히 나락농사나 지을 것이지  담배잎 말린다고 중고 철재를 구해다 단동 하우스를 짓는다고 법석이다. 입만 열면 상스러운 십원짜리 욕투성이에다 손버릇도 별로 안좋아 

 거리를 두던 터였다. 요란한 트랙터 소음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경유 기름 냄새에 가끔 담배 연기까지 더해지고 지근거리 야산의 밤꽃 향기가 화려하게 데코레이션되어 남풍을 타고 내 하우스로 휘몰아 든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참겠다. 암 참아야지. 나이가 몇인데. 그래 참고 말고.

문제는 트랙터 시동소리와 함께 온 들판을 적시는 유원지 음악. 목포는 항구란다. 수도없이 반복되는 싸이키델릭 사운드에 사지가 풀리고 몽롱해진다. 만사 제치고 거나하게 한잔하고 배 띄워놓고 놀아 볼까나.

고요하던 들판이 삽시간에 킬링필드가 된다. 겨우 진정시킨 마음에 사정없이 짱돌이 날아든다.

하루에도 몇번씩 며칠전까지 내내 계속 되었다. 목포가 뭐라고?  오케이 항구다. 목포가 항구라는디요.

한번 들어 보시라. 호소력 짙은 보이스 칼라에 화려한 반주가 곁들여져 모두가 금새 뿅하고 반하고 말리라.

머리맡의 라디오에서 들리는둥 마는둥 하는 라벨의 볼레로는 족탈불급이다. 핑크플로이드도 울고 간다.

이렇듯 자의반 타의반 올 델라웨어 수확은  괴롭게 마쳤다.

  농사후 소감은 조금씩 정리되는대로 간간히 올릴 작정이다. 아직은 허탈하고 복잡하다. 복기중이다.

어쨌든지 누가 뭐래도 목포는 항구다. 이 사실에 토달면 바로 죽음이다.

루이제 린저 누님이 말했지. 밤에 잠못 이루는 자와는 상종을 말라고. 왠지 앞으로 밤잠을 설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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