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연일 풀 베는 일로 몸이 고달프다.
비닐하우스 주변이라 쇠와 잔 돌들이 가득해서 매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게을러서 하우스 밖은 1년에 많아봐야 두 세 차례 정도 벤다.
본격 여름이 오기 전, 장마 끝 무렵, 그리고 추분 전후이다.
요 무렵 풀을 베어 놓으면 풀의 자람이 성하지 못해 내년 봄까지는 잊고 산다.
하기사 어느 작가가 시골로 내려가 농촌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두고 볼 양 마당에 풀이 자라는 대로 잠시 내버려 뒀더니 친절하게도 이웃 주민들이 약통을 매고 와 제초제를 뿌려 대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고.
사람의 잣대로 해충,익충 구별하듯이, 풀도 사람이 먹을 수 있으면 키워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한낱 처치의 대상 밖에 안되는 존재인가.
아무튼 풀이 잘 자란다는 것은 그 토지에 생산 여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그 풀들 속에는 또다른 작은 세상이 존재한다.
들녁에 나가 혼자 덜렁 일을 하고 있으면 적막하기조차 하다.
예초기 엔진 소리에 라디오서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도 못 들으니 나 원 참.
지루하니 쉬는 참에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찾아 머리 속을 뒤적거려 본다.
고등학교 1학년때 만난 몇몇 친구들은 여지껏 연락하고 지낸다.
모여서 공부한답시고 이 집 저 집을 번갈아 가며 엔간히 들락거렸다.
몇 해 전에 돌아 가신 한 친구 아버님은 공무원이셨는데, 약주를 굉장히 즐기셨다.
가끔 우리들이 모여 있는 걸 아시면 큰방에 우릴 주욱 불러 앉혀 일장 훈시를 하시고 이젠 다 컸다며 술을 한잔씩 따라 주시곤 했다. 우린 내심 쾌재를 부르며 무릎 꿇고 넙죽넙죽 주신 술을 받아 마시곤 했다.
어느날도 친구 아버님은 거나하게 약주를 드시고 집에 돌아 오셨고 딸부자집의 2대 독자인 친구를 부르셨단다.
나날이 성장하는 자식의 앞날도 걱정되셨겠고,집안의 대를 이을 자식인데 오죽 하실 말씀이 많았을까.
알 듯 모를 듯한 이런 저런 말씀을 꽤나 오래 하셨단다. 그러시더니 별안간 다그치듯이 유 노( You Know ) ? 하시더란다.
가만히 듣고 있다 화들짝 놀라 당황한 친구가 한참만에 내뱉은 소리에 친구 아버님은 조용히 자리를 파하셨단다.
...... 땡큐.
시간이 제법 흘러 그 친구는 80년대 시대의 우울과 함께 하며 힘들게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고 어느날 후배들과 포장마차에서 진지함을 안주 삼아 밤늦도록 얘기를 주고 받는데 옆에서 여자 몇이 소란스럽게 술을 마시더란다.
폼 잡고서 한참을 후배들을 두고 일갈을 하고 있는데 영 면이 서지 않아 말을 멈추고 타이르듯이 사태를 진정시켜 보라고 부탁하자, 우락부락한 한 후배가 조용히 그 쪽으로 잠시 다녀 오더니 이내 분위기는 쥐 죽은듯이 조용해 지더란다.
궁금해서 묻자 후배가 씨익 웃으며 하는말
..... 나하고 술 마실래? 조용히 술 마실래?
- D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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