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산사를 찾아나섰다.
기차를 타고 작년에 갔던 화엄사가 있는 구례구를 지나 순천에 도착.
오래전 회사 초년시절 시장조사차 지방의 여러 도시들을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순천은 이번이 초행이다. 모처럼의 여유로운 외출에 마음이 너그러운 탓인지 인심좋고 풍광도 좋은 참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승선교(昇仙橋).
직업이 농업이다보니 내내 차창 밖의 풍광을 유심히 본다.
넓다란 구례 들녁을 지나니 길 양쪽으로 산이 둘러쳐 있고 그 아래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지만 점차로 농토는 좁아진다. 과수나무는 대부분 감나무요, 논 밭에는 벼나 채소 보단 철쭉류쯤으로 짐작되는 관목성 어
린 조경수들이 빼곡이 심겨져 있다. 짐작컨대 섬진강을 낀 농토들은 배수가 잘되어 나무 키우기에 적합한데다 수도작보다는 경제성이 좋아 그리된듯한데 이 많은 나무들의 수요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선암사는 다른 유명고찰처럼 압도하는 웅장함은 없어 말그대로 절집 같은 느낌이지만 이런 소박함이 좋다.
역에서 구불구불 산길을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장터에서 여러 어르신들이 탔는데 일찍 탄 할머니는 우리가 있는 안쪽에 앉아 가고 앞에 꾸기듯이 밀려 탄 할아버지는 앞쪽에 서서 가는데 잠시후 버스안이소란스럽다. 다름아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휴대전화 통화소리가 사람속을 뚫고 오간다.
들어보니 어디가자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할아버지가 장날되니 먼저 서둘러 나서더니 이것저것 장본터에 할아버지는 기분좋아 술을 몇순배 하신듯하고 자그마치 3만원어치나 되는 고기의 행방이 묘연해서 옥신각신하다 결국 꾸중같은 잔소리에 몇정거장 지나 할아버지는 고기 찾으러 버스에 내렸고.
얼마후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와서 아무리 찾아도 고기가 없다하니 할머니의 호통이 보통이 아니다.
버스안은 이내 조용해졌고 한참을 달려 승주읍에 다다르니 할머니가 내릴양 장꾸러미를 주섬주섬하더디
" 오매, 괴기가 왜 여기 있다냐"
할머니~ 요새 얼라들 표현으로 치면요, 오늘밤 할마시 디져쓰.
단아하고 소박한 뒷모습.
천연기념물 선암매.
담벼락을따라 매화나무 50여주가 오백여년 전에 심겨진 것이란다.
쉿, 스님께서 수행중이니 떠들지 말고 까치발로 다니시오.
어쩜 글씨도 저리 힘있고 단정한지. 한자만큼 멋진 문자가 또 있을까.
산사 지붕 기왓골에 노란 은행잎이 가득하다.
멋진 소나무 자태. 옆으로 누워 자라 혹여 쓰러지지 않도록 괴어 놓았다.
능포 은다방에서 시주해 주셨군요,
유명한 선암사 뒷간. 화장실 규모가 대웅전급이다.
대략 통로 좌우로 남여 구분하여 8석씩 되는듯하다.
쭈그린 뒤로 붙은 글자를 찍기 위해 밖에서 눕혀 찍었다.
오죽 띨띨한 자들이 그리도 많았으면 친절하게 어울리지도 않은 페인트 글씨라니.
한지에 붓글씨로 썼으면 눈에 안띄었으려나?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에 걸쳐 이곳 승주 선암사 입구에 내리니 시간이 1시쯤이라 근처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먹었는데 맛이 그만이다.
아침에 볼일을 보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점심을 먹고 고즈녁한(사실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느낌이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서도) 산사의 뒷간에서 근심을 해결하면서 장쾌하게 떨어지는 유기물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한쪽 눈을 감고 애기 주먹만한 구멍으로 촛점을 맞춰 속을 들여다 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난 알쥐요.
알록달록 차려입고(게다가 등산 격식에 맞춰 히말라야 등정 차림에 스틱까지 휘두르며) 마지막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오가며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북새통인 산사를 빠져나와 다시 역에 내리니 아직 기차를 타려면 40분가량이 남아 아랫장 구경을 나섰다.
참 옛날 생각 많이 난다. 아직 목재소나 자전차포가 있고 시장에선 고무줄이랑 좀약도 팔고 저렴한 빤쮸들이랑 한달만 신어도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질 신발들에 막 담아온 듯한 갖가지 과일이랑 채소들까지.
여기저기 시장이 있어 80년대부터 2천년대 최신 버전까지 동시에 공존하는 넉넉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다시오마, 순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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